제4호 [UT 구성원 인터뷰]🎤박선규(CS ’03) 동문 인터뷰 파트 I

제4호 [UT 구성원 인터뷰]🎤박선규(CS ’03) 동문 인터뷰 파트 I
박선규 동문 (CS '03)

박선규 (CS ’03) 동문과의 인터뷰의 파트1로, 해당 동문 님을 더 잘 알아가기 위한 질문으로 구성한 인터뷰입니다.


🎤요즘 하루는 보통 어떻게 시작하세요?
집에서 사무실로 향하기 전, 간밤에 열린 미국 시장의 주요 이슈와 뉴스들을 꼼꼼히 살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출근 후에는 국내 시장 개장 전, 한국 시장의 주요 이벤트를 요약한 리포트와 이메일들을 훑어보며 시장 대응을 준비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습관이 하나 있다면요?
UT 입학 후 첫 2년을 Jester 기숙사에서 보냈는데, 당시 카페테리아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항상 방에 스리라차 소스를 상비해두고 다녔습니다. 거의 모든 음식에 스리라차를 뿌려 먹던 그 습관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요즘도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스리라차 소스를 찾게 됩니다.

🎤캠퍼스에서 아직도 종종 떠오르는 장소가 있나요?
과달루페(The Drag) 거리에 있던 '레인보우 오락실(Rainbow Arcade)'입니다. 수업 사이 공강 시간마다 들러 당시 최고 인기였던 <스트리트 파이터 3: 써드 스트라이크>를 한 판씩 즐기곤 했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인근 '아인슈타인 브라더스 베이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어떻게 하면 스트리트 파이터를 더 잘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 시절의 여유가 그립습니다.

🎤학생 때 상상했던 지금의 삶이나 일의 모습,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가요?
1998년 UT 입학 당시에는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며 델(DELL), IBM, 모토로라 같은 IT 대기업의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반이던 2002년,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IT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고, 저는 McCombs 경영대에서 Business Foundation 과정을 이수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2003년 증권가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년간 한국,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를 거쳐, 2023년에는 한국에서 자산운용사를 창업했습니다.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대학생 시절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16년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증권 자산관리본부의 한국 헤드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한국 생활은 저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5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믿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UT 졸업 후 MBA를 떠나기 직전인 2007년과 비교해 보아도 그 변화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제가 지난 16년간 몸담았던 스위스나 싱가포르 같은 세계적인 선진국들과 견주어도, 현재 한국의 인프라와 문화적 수준, 그리고 사람들의 역량은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역동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경쟁력이었는지를 한국에 돌아와서야 객관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동문들을 만나며 확신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UT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의 위상은 제가 학교에 다니던 2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당당히 인정받는 국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그 발전을 직접 목격하며 일조해왔다는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만약 일정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하루가 생긴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성인이 된 후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정작 서울에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서울의 낯선 골목들을 구석구석 걸어보며, 한국의 정취와 풍경을 온전히 만끽해보고 싶습니다.

🎤하다 보면 유독 힘이 나거나 보람을 느끼게 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제가 가진 경험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힌트'나 '위로'가 되는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제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늘 거대한 시대적 위기가 함께였습니다. 1998년 UT 입학 후 맞이한 2002년의 닷컴 버블은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저를 금융의 길로 이끌었고, 2009년 NYU에서 MBA 졸업을 앞두고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한 번 제 커리어를 시험대에 올렸습니다. 당시엔 눈앞이 캄캄한 혼란이었지만, 결국 그 파도를 타고 스위스, 싱가포르 등 세계를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며 지금의 커리어를 쌓아올리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동문회 활동을 통해 만나는 후배들이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들에게 저의 이런 시행착오를 들려줄 때 유독 힘이 납니다.

🎤동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오랜만의 한국 귀국 후 우연히 UT Alumni Center주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UT International Office의 Sydney Davis Pan 씨를 만났습니다. 그 계기로 한국 동문회를 다시 활성화 하려는 학교 측의 지속적인 노력을 듣게 되었고, 2025년 1월 김요한 회장님을 필두로 지금의 UTAKA가 출범하면서 Membership Development Committee Chair로서 힘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문들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중학교3학년 때 유학을 떠나 20년 넘게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한국 내 인맥이 비즈니스 관계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UTAKA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선후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순수한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요즘 사는 도시나 일상에서 은근히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있으세요?
2021년 한국 귀국 전 싱가포르에서 11년을 살았습니다. 싱가포르는 매우 살기 좋은 도시지만 늘 4계절이 그리웠습니다. 지금은 매일 변하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을 오감으로 느끼며 사는 일상이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아직 동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게 되면 반가울 것 같은 동문 님의 모습을 말씀 부탁드려요.
아마 당시 저와 학교를 같이 다닌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2000년대 초반 오스틴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3>의 '오스틴 챔피언'이었습니다. 2003년 졸업 때 까지도 Rainbow Arcade 기준 최다 승을 유지했었습니다. ㅎㅎㅎ